며칠 전 장 보러 나갔다가 비를 제대로 맞았음.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하늘이 애매해서 우산 챙길까 말까 고민했는데, 이런 날은 무조건 챙기는 게 맞았음. 동네 마트 지나서 시장까지 갈 생각이었는데 첫 골목에서 바로 포기함.
마트 처마 밑에서 한참 서 있었음. 저녁거리 사러 나온 건데 시간이 밀리니까 배가 먼저 고파짐.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도 늦게 먹으면 되겠지 했는데, 막상 비 냄새 맡으면서 서 있으니 이상하게 밤에 본 요리 영상 속 메뉴만 계속 생각났음. 영상 볼 때는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장바구니 들고 나니 귀찮음이 이김.
안으로 들어가서 계획에 없던 할인 코너 앞에 멈췄음. 평소에는 필요한 것만 집고 빨리 나오는데 비 피하다가 시간 남으니까 포장 뒷면까지 갑자기 꼼꼼하게 보게 됨. 결국 싼 것보다 오늘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만 골라 들었는데, 밖에 나갈 타이밍을 재느라 계산대 근처를 한참 맴돌았음.
문제는 장을 다 보고 나왔는데도 비가 그대로였다는 거임. 봉투 한 손, 우산 한 손이라 걷는 속도 개느렸음. 원룸 도착하니 원래 먹으려던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고 젖은 바지부터 갈아입었음. 주방에 장본 것 풀어 놓고도 바로 불 켤 마음이 안 생김.
결국 냉동실에 있던 걸 먼저 꺼내 한 끼 때웠음. 시장까지 갔으면 이것저것 더 사서 제대로 먹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, 아마 돌아와서 똑같이 대충 먹었을 듯함. 자취하면서 끼니 리듬은 거창한 계획보다 비 한 번, 늦은 점심 한 번에 더 잘 흔들리는 듯.
옥수수는 다음 날 삶았음. 인덕션 1구라 냄비 올리는 순간 다른 건 아무것도 못 함. 다 먹고 싱크대 보니까 냄비 하나만 남아 있었음. 그건 좀 마음에 들었음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