선반 구석에 쌓아둔 비상식량 칸을 오랜만에 열어봤음. 라면 몇 봉지, 즉석밥, 통조림 몇 개 사놓고 손도 안 댄 채로 방치돼 있었음. 유통기한부터 확인해야겠다 싶어서 하나씩 꺼내봄.
라면은 재작년에 대용량 세일할 때 박스로 사놓은 게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고, 즉석밥은 헬스 시작하고 나서 밥 대신 뭐 먹을까 고민하다가 몇 개 쟁여놓은 거였음. 결국 단백질 위주로 식단 짜다 보니 밥은 거의 안 먹게 돼서 그대로 쌓여만 있었던 듯. 통조림 참치랑 옥수수콘은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남.
배달비 아까워서 뭐든 쟁여두는 버릇이 있는데, 막상 쌓아만 두고 안 먹는 게 함정임. 사놓으면 마음이 편한데 그게 다임. 세일한다길래 홀린 듯이 담았다가 그대로 방치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 듯. 유통기한 임박한 것들부터 따로 빼놓고 이번 주 안에 처리하기로 함.
정리하다가 국물 하나 끓여 먹자 싶어서 라면 하나 뜯음. 물 올려놓고 스프 뜯다가 핸드폰으로 커뮤니티 글 읽기 시작한 게 문제였음. 댓글까지 정주행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남. 놀라서 뛰어가보니까 냄비 바닥이 거의 눌어붙기 직전이었음. 인덕션이 1구짜리라 신경 쓸 게 그거 하나뿐인데도 결국 이럼.
다행히 완전히 태우진 않아서 국물은 건졌는데 밑에 살짝 눌은 냄새가 섞여 들어감. 그냥 먹었음 ㅋㅋ. 어차피 혼자 먹는 거고 맛만 크게 안 이상하면 상관없다는 주의라. 이런 식으로 딴짓하다가 사고 친 게 처음도 아님. 전에 볶음밥 태워먹고 편의점 간 날 얘기도 썼었는데 이번도 결이 비슷함.
생각해보면 자취 5년째인데 뭘 올려놓고 딴짓하는 버릇을 아직도 못 고침. 계량도 마찬가지라 스프 양을 눈대중으로 가늠하다가 짜서 물을 두 번이나 더 부었음. 레시피고 뭐고 결국 감으로 하는 패턴이 반복됨.
통조림은 그날 저녁에 참치 하나 따서 먹었고 나머지는 선반 앞줄로 옮겨놨음. 뒤로 밀어놓으면 또 잊어버릴 게 뻔해서 눈에 보이는 자리에 두기로 함. 설거지 늘어나는 게 싫어서 냄비 하나로 끝낼 수 있는 메뉴만 자꾸 고르게 되는데, 비상식량도 결국 그런 식으로 소비 순서가 밀리는 것 같음. 즉석밥은 전자레인지만 돌리면 되는데도 그마저 귀찮아서 손이 잘 안 감. 이럴 거면 왜 사놨나 싶다가도 다음에 또 세일하면 또 살 것 같음.
선반은 한결 가벼워졌고 즉석밥 몇 개는 이번 주 안에 처리하기로 마음먹었음. 냉동실에 넣어둔 닭가슴살이랑 같이 먹으면 그럭저럭 끼니가 될 듯.